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부동 전투 (문단 편집) ==== 치열한 공방전 ==== [[파일:8.10 반격 계획도.png]] >1. L.D명 하달되면 포병 및 박격포의 집중 사격. >2. L.D명 하달 시기는 전기에 의함. >3. 포병은 사격 계획에 의거 사격준비. 1950년 8월 10일 01시에 수색대는 적 약 1개 대대가 밤나무 밭에 집결해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적은 이미 포병사격 준비를 끝냈기 때문에 수색대장은 아군이 적의 포격 사정거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재빨리 포병 지원사격을 요청하여 적에게도 포격을 가할 준비를 하였다. 이후 양측의 약 10여 분 간의 포격이 이루어지고 포격이 끝나니 평범했던 밤나무 밭과 그 주변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탈바꿈한 후였다. 이날 밤, 적 지역으로 침투한 수색대는 11일 새벽까지 용소동까지 진출하던 중 동이 텄다. 06시에 적은 약 2개연대 병력으로 침공하여 왔으므로 제1대대를 161고지에서 168고지에, 제2대대를 신기동 일대에, 제3대대는 161고지에 각각 이동하게 하여 병력을 배치했다. [[파일:8.11 병력 배치도.png]] 8월 11일 12시에 적은 전차를 선두로 한 2개 중대가 금호동과 반포동을 연하는 선으로 나타나 아군과 치열한 교전을 전개되었다. 교전이 계속되던 중 13시 30분에는 적 기관총 중대까지 합세하여 제3대대를 향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이후 적은 점차 연대 방면으로 화력을 집중하였다가, 15시에 연대 전 화력을 동원하여 잠시 격퇴하는가 하였다. 그러나 적이 후속부대로 손실병력을 대체하는 이른바 '일렬종대'를 이용한 파장공격을 계속했기에 제1대대는 막대한 손실을 강요받았다. 연대장은 위급한 상황을 보고받곤 제1대대를 다상동 우측으로 철수시키고 제2대대로 하여금 반격을 개시하게 하여 다행히도 위기를 넘겼다. 제3대대는 적의 침공에 대비하고자 금산동에 배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